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터셉터》 평론: 고립된 방공 기지, 단 한 명의 방패

by alpharius 2025. 5. 23.

필사적으로 방공기지를 지키는 여군의 투혼

 

1. 서두: "세상을 구하는 건 언제나 단 한 사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인터셉터》(Interceptor, 2022)는 2020년대 액션영화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분명히 이질적이다. 오로지 단 한 공간, 고립된 미사일 요격 기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수백 명이 총격전을 벌이는 블록버스터들과는 달리 오직 한 사람의 신념과 투지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이 단출한 구성은 마치 무대극을 연상케 하며, 동시에 90년대 액션 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인터셉터》는 단순한 복고 영화도, 전형적인 영웅 서사도 아니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한 명의 여성 군인’이 미국을 구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권력투쟁, 윤리적 갈등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2. 줄거리 개요: 적은 밖에만 있지 않다

 

주인공 제이 제이 콜린스(엘사 파탁키 분)는 미국 육군 정보부에서 훈련받은 엘리트 장교로, 워싱턴에서 일어난 내부 고발로 인해 시베리아에 위치한 ‘인터셉터’ 기지로 전출된다. 이 요격 기지는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올 경우 이를 공중에서 요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선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테러리스트들이 이곳을 습격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이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은 러시아 핵무기 16기를 탈취해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건, 그들의 리더 알렉산더 케셀(루크 브레이시 분)이 전직 미군 장교라는 점이다. 제이 제이는 내부에서 반란자들과, 외부에서는 미사일 발사와 맞서며 홀로 싸움을 시작한다.

 

3. 구조의 힘: 밀실극과 액션의 절묘한 조합

 

《인터셉터》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단일 공간—시베리아 방공 기지 내부—에서 진행된다. 이는 예산상의 제약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그 제약이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작용한다. 90분 남짓의 상영 시간 동안 카메라는 거의 쉼 없이 좁은 통로와 모니터 앞을 오간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제이 제이가 홀로 요격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제로 룸’이라 불리는 방어실에 스스로를 가두고, 감압 상태에서 적과 사투를 벌이는 부분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전투를 넘어, 캐릭터가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심리적 여정을 담아낸다. 좁은 공간, 강한 조명,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 이 모든 요소가 마치 생존 게임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4. 캐릭터 분석: ‘강한 여성’의 진짜 의미

 

엘사 파탁키가 연기한 제이 제이는 기존의 여성 히어로와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것도, 완벽한 리더도 아니다. 오히려 PTSD와 성희롱 피해, 군 내부의 고립감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중반부에는 그녀가 과거 워싱턴에서 상관의 성희롱을 고발했다가 군 내부에서 배척당했던 사연이 드러난다. 그때 그녀를 괴롭혔던 시선들은, 현재 테러리스트들이 그녀를 조롱할 때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진짜 적은 누구인가?”

강인한 체력과 냉정한 판단력, 불굴의 정신력.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제이 제이가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믿음의 근거 없는 강인함’, 즉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다. 그녀는 단순히 미국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인터셉터 사진

 

5. 빌런의 존재감: 냉소와 교양을 겸비한 괴물

 

악당 알렉산더 케셀은 표면적으로는 전형적인 ‘내부 반란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대사는 상당히 지적이며, 체제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짙게 깔려 있다. 그는 미국의 부패와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오히려 자신의 테러 행위를 정의로 포장한다.

이 캐릭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악의 구현이 아닌 ‘왜곡된 정의감’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 단지 그 과정이 피를 요구할 뿐이지.”

이 대사는 ‘권력에 대한 복종과 저항’이라는 고전적인 테마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제이 제이와 알렉산더의 충돌은 결국 두 가지 신념의 충돌이다. 하나는 불완전한 정의라도 지켜야 한다는 신념, 다른 하나는 정의란 새로 구축해야만 가치 있다는 신념.

 

6. 여성 액션의 재정의: 리플리의 후계자?

 

《인터셉터》는 분명 ‘여성 액션 영화’의 계보에 속한다. 시고니 위버의 《에이리언》, 샬리즈 테론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린다 해밀턴의 《터미네이터》 등, 그 전통을 잇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물리적인 힘보다는 정신적인 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제이 제이는 근육질의 전사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진짜 무기는 책임감과 인내다. 여성 캐릭터가 액션에서 성공하기 위해 더 강하게, 더 잔인하게 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내면의 강인함을 중심에 놓는 건 이 영화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다.

 

7. 연출과 비판: 한계와 가능성

 

감독 매튜 라일리에게 이 영화는 첫 연출작이다. 그 점을 감안하면, 《인터셉터》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연출력을 보여준다. 특히 액션의 리듬감과 클로즈업을 활용한 긴장 연출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다만, 영화의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반복되는 침입-방어 구조, 일부 대사의 유치함, 몇몇 캐릭터의 평면적인 설정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낮은 예산과 제한된 공간에서 오는 필연적인 제약으로 볼 수도 있다.

 

8. 결말과 여운: 영웅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나?

 

영화의 결말은 예상 가능한 해피엔딩으로 귀결된다. 제이 제이는 결국 미사일을 모두 요격해내고, 기지는 구출되며, 그녀는 다시 미국 본토로 돌아온다. 이 클리셰적 결말은 다소 아쉽기도 하지만, 영화가 던진 메시지를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한 아이가 그녀에게 “당신은 제 영웅이에요”라고 말하는 순간, 관객은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세상을 구한 영웅’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한 여성의 승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9. 총평: 작은 영화가 가진 거대한 메시지

 

《인터셉터》는 단순한 액션 영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작고 고립된 공간에서, 단 한 명의 여성이 거대한 세계를 막아내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현재 직면한 사회 문제, 권력 구조, 젠더 편견 등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화려한 CG나 거대한 전투 장면 없이도, 오로지 인간의 신념과 결단으로 긴장과 감동을 만들어내는 이 영화는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렇다. 세상을 구하는 건 거대한 군대나 영웅적인 남성 전사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의 선택일지도 모른다.